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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댓글로 류혜이@님도 언급했지만 
오늘밤 KBS1 방송에서 상영한다고 합니다.
http://www.kbs.co.kr/1tv/enter/indiefilm/view/2061242_36915.html

저는 출연했지만 연기도 별로 못하고, 노래도 별로 못 부르고 창피스럽습니다만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문래동에서 뵐 분들은 좀 있다 봐요! 

Posted by 한받

2012/12/15 17:30 2012/12/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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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받

2012/11/30 13:19 2012/11/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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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한받씨 기사

[특집 | 대안미래 일구는 사람들]문화예술 -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음악 유통 꿈꾼다
2012 11/13주간경향 1000호
ㆍ자립음악생산자조합 결성 나선 홍대 거리 음악인 한받씨

한받씨(본명 한진식·38)에겐 별명이 많다. 엄밀하게 따지면 별명이기보다는 밴드의 이름이지만 원맨밴드이다 보니 팀 이름이 바로 본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도 쓰이는 것이다. ‘아마츄어증폭기’,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이 그가 거쳤고 또 소속된 밴드의 이름이다. 작은 음악강좌를 맡고 있는 강의실에서 만난 한씨는 그의 음악처럼 발칙하고 강렬한 인상의 예술가라기보다는 막 태어난 둘쨋딸이 눈에 선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이제야 하나의 가족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입니다. 첫째 아이는 이제 두 돌인데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을 많이 봐서인지 춤을 제법 잘 추고 있어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줍니다.”

한씨는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영화와 함께 보냈다. 영화에 쓰일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려는 욕심에 기타를 배웠고 음악을 통해 자신의 또다른 욕구를 표현하게 됐다. 지금은 홍대 주변에서 널리 알려진 예술인이지만 그 역시 예술로 먹고사는 생활에 절망한 때가 있었다. 한씨는 “제 공연이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많이 나가기도 했는데, 어떤 측면에선 이런 퍼포먼스로 공연에 필요한 어떤 단련을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며 “몇 년의 공백기간 중 많은 일들을 겪으며 절망의 시기를 지내고 나서야 기타를 치는 데 그제야 노래라고 할 만한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인 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한받씨. | 김태훈 기자

‘아마츄어증폭기’를 통해 자신을 위로했던 ‘내면적인 판타지’를 음악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던 그는 사회적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투쟁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썰렁한 통행로에 불과했던 홍대 앞 서교지하보도를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도록 일조했던 그는 도시교통계획 때문에 지하보도가 폐쇄되는 것을 보며 “시민들의 자율적인 공간을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말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만드는 일에 앞장선 것도 사회적인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한씨는 자신을 “예술가이기보다는 엔지니어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 사회가 잘 운영되어 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라며 조합이 최근 팔당 두물머리의 유기농업인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보존하려는 투쟁에 꾸준히 합류한 일이 바탕이 됐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을 펼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먹는 양식을 제공받는 데 그치지 않고 영혼의 양식인 음악을 제공하는 진정한 농촌과 도시의 교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통념을 현실로 체감하는 음악인들이 자립음악을 위해 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씨는 “우리는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에 배고플 수밖에 없고, 또 예술은 기본적으론 1인의 채널이기에 매스미디어에 소개되지 않는 한 굶을 수밖에 없다”면서 “연대를 통해 좀 더 넓은 채널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상부상조해 배고픔을 감내하며 이겨내자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대 앞 국숫집 ‘두리반’의 철거농성장에 합류한 음악인들 가운데서 자립음악을 생산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조합은 소규모 음악생산자들이 자유롭게 음반과 공연 등의 작업을 기획·진행하기 위한 환경과 음악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잡았고, 한씨도 이때부터 준비모임에 합류해 활동하고 있다. 한씨는 “작은 용산 두리반에 관심을 가지고 자립음악회로 합류하면서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다시 태어났다”며 자립음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자본과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의 연대를 통한 자립활동을 지향하는 만큼 한씨는 행정적인 지원보다는 “우리 같은 조합이나 연대체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예술활동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자립음악인의 한 명인 한씨 자신의 경제적 상황도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음악창작 강의 외에는 현재로선 음악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공연이 없는 날엔 ‘구루부 구루마’라 이름 붙인 손수레를 끌고 홍대 주변을 순례하거나 재개발 철거현장과 같은 투쟁현장을 찾는다. “구루마를 끌고 다니며 내가 만든 음악을 파는 것은 어쩌면 자랑스럽고 가장 해볼 만한 일”이라는 그는 ‘구루마’에 그와 같은 가난한 예술인들의 책과 음반을 싣고 다니며 때로는 즉흥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시를 쓰는 아내의 시집이 나오면 ‘구루마’에서 팔 계획이라는 그는 “자본에 기대지 않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보일지라도, 진정한 자립음악가로 거듭나서 물질과 화폐와 자본이 아니라 사람에 기대어 서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출처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211061707411&pt=nv
 

Posted by 한받

2012/11/07 12:16 2012/11/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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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suyunomo.net/?p=10787
http://suyunomo.net/?p=10794

 

- 숨

뿅뿅뿅~쿵짝쿵짝. 트로트와 일렉트로닉 리듬이 묘하게 뒤섞인 사운드, 울긋불긋 조명. 알록달록한 모자와 옷을 입고 나타난 야마가타트윅스터. 그가 이끄는 대로 우리는 홀린 듯이 홍대 앞 도로에 뛰쳐나갔다. “돈만 아는 저질, 돈만 아는 저질!!!” 집회신고도 도로점거의 계획 없이도 불법을 저지른 순간의 흥분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도로에 그어진 금만 넘어선 게 아니었다. 몽환적인 비트 속에서 골반 돌리기 춤사위를 따라하는 나는 평소의 엄숙하고 점잖은 내가 아니었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쥐20그래피티 후원 주점에서 처음 만난 은밀한 그 남자. 우리는 모두 그에게 홀려 있었다.

철거투쟁을 하고 있던 명동 마리에서도, 두물머리를 지키기 위한 유기농 집회에서도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의 그 은밀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었다. 쿵쿵대는 비트의 강렬한 음악이지만 사람들은 그 앞에서 흐물흐물해지면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저 음악과 춤의 정체는 뭐지? 가슴을 뻥 뚫어주는 적나라한 가사는 또 어떻고?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용기를 내서 인터뷰 요청 전화를 했다. 단정하고 점잖은 목소리의 ‘한받’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그렇다. ‘한받’이 ‘야마가타트윅스터’다. 꼭 두 얼굴의 사나이 같다.

인터뷰를 위해 상수역 앞에서 만났는데 그가 먼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한받은 목소리만큼 정중했고 약간의 조심스러움도 겸비했다. 하체에 쫘악 달라붙는 빽바지가 오묘하다. 까페에 마주보고 앉으니 얼굴의 주름과 새치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싸인을 해달라고 하자, 또박또박 써내려가다가 마지막 줄에 다소곳한 하트를 그려넣으며 수줍게 웃는다.

야마가타트윅스터, 광장에 서다

야마가타트윅스터는 한받이라는 남자가 꺼내쓰는 광대탈과 같다. “야마가타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많이 하고 음반을 내니까, 일단 생계를 책임지는 부분이 크고. 저에게도 삶의 활력소가 되는 거 같아요. 공연장이나 새로 만나는 분들의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그런 교류들은 다 좋은 경험들이 되니까요. 춤도 보니까 엄청 잘 추더라구요.(웃음) 그전까지는 모니터를 안 해서 몰랐는데 이번에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카메라로 찍힌 거를 봤거든요. 자세히. 거리에서 많이 단련이 돼가지고 춤도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투쟁현장과의 첫인연은 클럽빵에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있던 콜트콜텍해고노동자 문화연대 공연이다. 이 때는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할 때였는데 그때 만났던 뮤지션들의 제안으로 집회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기륭전자 단식투쟁 현장에 가서 공연을 하고 그곳에서 알게 된 ‘처절한 기타맨’이라는 뮤지션의 제안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있는 전태일거리문화행동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일단은 열린 공간이고 목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모여 계신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까. 그 분들에게, 그분들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을 퍼포먼스나 노래로 생각하고 준비하게 되었어요. 투쟁 때문에 긴장되고 격앙된 분들의 마음을 흥이 나는 댄스음악으로 모아주고, 피로를 가시게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아마츄어증폭기의 음악이나 야마가타트윅스터의 댄스곡을 막 하다가 어느 순간 여기에 좀 녹아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미디어법통과, 용산참사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노여움 같은 게 쌓였고, 이게 퍼포먼스로 폭발하기 시작했죠. 노래 가사도 그렇구요. 한번은 전태일 거리에서 미디어법통과를 비판하는 노래와 퍼포먼스를 했는데 저도 즐겁고 통쾌했고 보시는 분들도 ‘속이 뚫리는 것 같다’고 하고. 사회적인 이슈나 현장에서 원하는 것들을 노래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광장의 즉흥성을 버무리다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과 현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다르다. 노래의 가사나 퍼포먼스의 내용뿐만이 아니다. “훨씬 더 즉흥적인 것들이 많이 들어가요. 클럽에서는 한정된 무대라는 공간에서 해야 하잖아요, ‘찹쌀송’할 때 가끔 밖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달라요. 집회나 시위는 길거리나 광장 같은 데서 하기 때문에 퍼포먼스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어요. 관객과 퍼포먼스 사이에 큰 벽이 없고 언제나 한데 어우러질 수 있으니까.”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광장이 더 뻘쭘하지 않을까. “그런 것도 제가 퍼포먼스로 이겨내려고 하죠. 부추기려고 많이 노력해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을 모아서 비트에 맞춰 함께 춤을 추자, 이렇게요. 집회나 시위현장에서는 아무래도 함께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니까 호응을 많이 해주세요. 젊은 친구들의 반응이 잘 나오고, 어르신들은 쑥스럽고 그러니까 뒤에서 박수만 치거나 가만히 보고 계신다던지 해요. 가끔 흥에 겨운 할머니가 춤을 추시기도 하고.”

그에게 공연은 계획이 아니다. 현장이 주는 즉흥성을 충분히 살린다. 혹시 즉흥성도 연습을 하는 건가? “즉흥적인 거를 계속 하다보면 즉흥으로 하는 것의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가사 같은 것도. 그 날 그 날 상황에 따라 이슈나 투쟁에 맞게끔, 가사를 변형시킨다거나. 노래를 처음 발표하는데 상황에 맞게 가사를 넣었는데 조합이 괜찮다, 반응이 많이 온다 하면 저 자신도 뿌듯하고요. 아, 최근에 ‘공사 말고 농사’ 그것도 짜릿했습니다. 그때 공연 이틀 전인가 디온씨가 연락이 와서 만나가지고는 ‘이런 집회를 하려고 하는데 같이 어울릴만한 그런 노래가 없다. 한번 생각해보고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 달라’고. 그때 모토가 ‘공사 말고 농사’였으니까 그걸 한 번 대입해본거죠, 비트 샘플에서 차용해가지고. 의외로 괜찮은 거 같았어요. 딱 했을 때 사람들도 많이 열광하고 호응해주고 하니까 많이 좋았어요. 기존에 있던 곡은 아니라 따로 만들었죠. 대한문 앞에서 한번, 명동에서 행진하면서 한번 했었는데 두 번 다 재밌었어요.”

그의 즉흥성은 장소를 넘나든다. 수유시장 작업의 일환으로 발견했던 노래가 두리반에 와서 투쟁의 댄스음악이 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야마가타트윅스터의 음악 중 아주 유명한 ‘돈만 아는 저질’. 도입부분이 ‘동숙의 노래’라는 트로트로 시작된다. “로맨스 조가 제안을 해서 수유시장 공공프로젝트에 합류해 리서치를 했거든요. 수유시장 상인들의 엘레지라고 해야 되나, 비가. 좋아하는 유행가나 애창곡도 되고. 애창곡이 된 사연들을 조사하다가 ‘동숙의 노래’라는 그 노래를 발견했던 거죠. 저도 몰랐거든요, 그 노래를. 시장에서 김 굽는 할머니가 그 노래의 사연을 얘기해주셨는데 인상에 남았어요. 원곡을 샘플링하면 댄스곡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죠. ‘저질러 놓고’(동숙의 노래 가사)의 ‘저질’이라는 단어가 그 당시의 두리반 활동과 매치가 되면서 ‘돈만 아는 저질’이라는 가사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 노래로 나오게 됐고, 그걸 두리반에서 처음 공연을 했는데 호응이 엄청나게 좋은 거죠. 우리가 실제로 돈만 아는 저질이라는 말에 다들 공감하잖아요. 다른 공연 때마다 하게 되고….”

가장 많이 낮아지기, 저질

‘찹쌀송’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전혀 야하지 않다. “흰밥 쌀밥 볶음밥….현미 유기농 현미….찹쌀찹쌀 찹쌀떡~I wanna more, I wanna more~ ” 하지만 그의 발성은 충분히 끈적하다. 춤사위는 또 어떤가. 허리를 돌리고 골반을 튕겨낸다. 흐릿한 조명 아래서건 화창한 햇빛 아래서건, 사방이 막힌 클럽에서건 탁 트인 광장에서건 변함없다. “춤을 추면 야한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아내가 싫어하긴 해요. 애 아빠가 뭐하는 거냐. 그런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기 때문에 하는 거고. 장터 유랑하는 악사라던지 각설이라던지 그런 분들의 피가 제 저변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해요. 그런 행동들이 어처구니없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잖아요. 저 자신이 많이 저질이 되는 거죠. 많이 낮아져 있는 상태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거죠.” 그와 함께 우리도 저질이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저질을 만나면서 사회가 그어놓은 금에서도 벗어나는 쾌감. 도로를 질주하는 흥분. 나의 저질스러움과 사회의 저질스러움을 함께 폭로하는 아슬아슬한 축제. “그것도 하나의 금기를 깨는 거니까. 거기서 쾌감이 엄청나게 상승하기도 하고. 퍼포먼스를 그렇게 하니까 재밌기도 하고. 그래서 말 그대로 하나의 카니발을 만들어 가는 거 같아요.”

 

 

상수동 음악가의 저항 : 구루부구루마

한받은 공연이 없을 때 “구루부구루마”를 끌고 다닌다. 노란색 몸체에 모서리마다 파란 형광띠를 두른 작은 구루마에는 책과 음반이 담겨있다. 극동방송국 앞에서 시작해서 상수동 삼거리, 홍대 정문 앞을 찍고 걷고 싶은 거리에 들렀다가 KT&G상상마당 앞에서 마무리한다. 한 곳에 2-30분 머무른 후 다음 장소로 구루마를 끌고 이동한다. 음반의 가격이 정해져있지만 실제 받는 돈은 그때마다 다르다. 손님이 잘못 들어서 틀린 금액을 내도 그대로 받고, 할인도 많이 해준다. “쌀 같은 걸로 물물교환하기도 해요. 쌀하고 교환하면 그 쌀이 나한테는 몸의 양식이 되고 내 음반은 그 사람한테 가서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게 재밌어요. 촌에서 농사 지은 쌀을 가져오시거나 집에 쌀이 많다고 가지고 오시거나 하는 분들이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요.”

구루부구루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우리는 거리로 나오려는 시도를 공연부터 생각하잖아요. 길거리 공연. 거기서 조금 더 생각해본 거죠. 공연만 할 게 아니라 나가서 내가 만든 음반을 알리고 판매를 하자. 한 곳에 정착하는 게 아니라 계속 이동하는 것도 괜찮겠다, 운동도 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구루마를 떠올리게 된 거죠. 주변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많이 보이고 구루마도 눈에 띄니까, 거기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두리반에 합류하면서 흐지부지됐는데 올해 1월에 시작하게 됐어요. 첫째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이게 나름 운동이 되거든요, 팔이랑 다리랑. 두 번째는 내가 만들어낸 음반과 친구의 음반들, 책들을 거리로 가지고 나와서 알리고 판매를 하기 위해서죠.”

하루 0명에서 10여명까지의 손님이 들른다. 그의 팬이나 아는 사람들이 부러 찾아오거나 우연히 발견해서 먼저 아는 척을 해주면 힘이 난다. “하루 종일 손님이 없는 날이면 감정이 하락곡선을 그려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음반을 잘 안 사고, 음악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체험하니까요.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은 아주 극소수라는 것. 구루부구루마를 하면서 깨닫고 있는 거죠. 어쩌면 이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인 거고, 공연에서는 차려져있으니까 거기에 맞게 또 자유롭게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은 매일의 싸움이다. 공연이라는 특정한 스케쥴이 아닌 일상에서 음악가로 살아가기 위한 싸움. “저항. 저는 계속 저항을 하고 있어요. 책임감 비슷한 생각으로 나와요. 음반을 많이 안 팔아도, 이 거리를 음악으로 채우고 싶어요. 음악인으로 살게 하는 형식이기도 하죠. 집에서 음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구루마를 꾸미기도 하고. 친구들의 음반이나 책을 위탁판매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다 포함되는 거죠. 임대료를 내고 그런 게 없으니까, 수수료도 최소한으로 받고 수익이 작가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처음에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음식하는 구루마 끌겠다, 이런 얘기도 나왔는데 제가 직접 하는 걸 보고는….(웃음)따로 훈련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단련됐다고 해야 하나. 거리위에서 계속 공연을 하니까 알게 모르게 단련되고 수련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힘들어도 이 동네를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구루마를 계속 끌고 나오는 거죠. 나와 보면 정말 속도가 장난 아니에요, 자본에 의해 변화되는 속도가. 매일매일 허물어지고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다 요식업 이런 거라서 참 안타깝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머문 곳은 구루마와 마주보고 있는 상수동 삼거리의 한 공사현장이다. 도로면으로는 레코드 가게가, 안쪽으로는 살림집이 있었던 자리라는데 건물은 없고 땅고르기가 한창이다.

발효하는 음악, 발효하는 음악가

그는 지난 여름 목포, 순천, 하동, 부산에서 구루마를 끌고 다니며 춤추고 노래했다. 이름하야 경전선구루부구루마. 도착하는 도시마다 폐품을 활용해서 재활용 구루마를 즉석 제작했다.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는데 순천이 재밌었던 거 같아요. 순천만에 새벽 일찍 가서 어스름 안개 속 일출도 보고. 밤에는 순천의 밤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어서 나이트클럽에 갔어요. ‘스톰’이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의 남자댄서를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죠. 삼각팬티만 입고 나와서 무용하고. 그런 거는 처음 봐서 나름대로 충격이었습니다. 뭔가 전체 분위기하고 모든 것들이 상당히 감명 깊었습니다. (혹시 이후 공연에 차용하고 싶으신 거는 있어요?)아무래도 이후 공연에 영향이 있겠죠?(웃음) 순천에 가면 꼭 ‘스톰’을 보시기를”

그 중 하동은 과거와 오늘의 그가 만나는 곳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는 “인생의 절망 속에서 희망이 서광처럼 그를 찾아들었던 곳이 하동”이었다고 했다. 20대 후반 벤처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카드빚을 내서 도망 다니던 때가 있었다. 동유럽에서 집시로 떠돌며 한국에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카드빚을 갚기 위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다니면서 일을 했다. “그 중에 하동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삶을 놨다고 해야 하나. 절망을 하면서 삶 자체를 풀어버린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유랑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죠. 섬진강과 재첩국…참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자양분이 된 거죠. 그 때 아마츄어증폭기 노래가 만들어지고. 저 자신이 노래로 많이 위로를 받았던 시기였어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타지를 만들어서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할 때 뭔가 힘이 많이 되는 거 같아요. 아마도 한번 절망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인간이 신기한 게 자기가 거쳐 왔던 삶을 노래로 만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 같은 일도 생기구요.”

고통을 힘으로 변성시키는 것. 우리는 누구나 아프다. 그의 말처럼 음악이 인간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라고 한다면 그의 음악과 춤이 지닌 힘 또한 지나간 고통 속에서 나왔으리라. 그는 그 과정을 발효라는 말로 설명한다. “발효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이 변질되는 데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게 하잖아요. 경험이라는 것도 우리 안에 기억으로서 들어가 있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발효가 되었을 때, 그때 노래로서 나올 수 있죠. 발효음식이 인간의 장운동을 촉진하고 신체에 이로운 것처럼, 발효음악은 영혼의 장운동을 촉진하고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험을 그대로 드러내면 날 것이라서 남이 섭취하기 힘드니까. 일정시간을 보낸 뒤에 그것이 흐물흐물해졌을 때 노래로 만들어가지고 사람들이 섭취할 수 있도록 주는 거죠.”

그의 발효음악론은 음악의 장운동론으로까지 나아간다. “네 가지 차원의 장운동. 영혼의 차원뿐만 아니라 음향적인 차원, 재화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까지. 소리라는 거 자체가 진동이니까, 주변의 공기를 운동시키잖아요. 주변의 공기는 장(場)이라고, field. 그걸 운동시키면 장운동. 재화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음반을 내거나 음원을 냈을 때, 그것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시장이라는 장 속에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하고. 사회적인 측면은 자립음악가나 민중음악가들이 공연을 했을 때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 두리반에서나 두물머리나 그런 거죠. 저도 많이 하다보니까 이렇게 잡히더라구요. (웃음)아직 체계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그런 표현을 합니다.”

함께 자립하는 음악가

한받은 자신의 직업을 자립음악가라고 소개한다. “쉽게 기존의 닦여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야생의 길을 찾는 거에요. 음악가로 생존해나가면서 음악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모색하고 그 길을 개척하는, 그런 음악가를 자립음악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구루마를 끄는 것도, 조합을 만든 것도 그런 활동의 하나구요.”

한받이 참여하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120명 규모의 협동조합이다. 2011년 여름쯤에 창립을 했는데 음악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음악연주나 음향녹음기술 관련 강좌를 열기도 하고, 한예종 학생회와 공동으로 대공분실이라는 공연장을 구축해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만들고 기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도 한다. 큰 자본이 없는 음악가들이 음반을 만드는 데 대출을 해주기도 한다. 음향장비대여와 공연을 통한 수입, 매월 조합원 회비를 적립해서 만든 자금은 음반 제작과 공연에 재투자 한다. “결국 자립음악이라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연대를 해서 힘을 합쳐야 대기업의 자본이나 매스미디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만의 자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세 가지 중요한 가치가 그들의 자립을 떠받치는 근거가 된다. ‘지역․생활․민중’. ‘지역’의 가치는 음악가가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지역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악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역적으로 분기가 되는 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석관동에는 대공분실, 문래동에는 로라이즈, 이태원에는 꽃당이라는 클럽이 있다. 홍대 앞에는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가깝게 지내는 공중캠프 등 몇 개의 클럽이 있고 두리반식당에서도 일요일에는 가끔 공연을 한다. 이들 클럽은 지역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

‘생활’은 음악가 자신의 생활에서 비롯된 경험을 꾸미지 않고 가감없이 노래하고 음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민중’이라는 말에는 자립음악가 자신들이 그 속에 속하기도 하고,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 하는 음악을 만들자는 지향을 담았다.

“저는 음악을 세 가지로 분류해요, 이른바 3실음악. 실용음악. 실천음악. 실험음악. 실용음악은 일반적인 대중음악.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실용적인 음악. 실험음악은 노이즈나, 음악이 어디까지 음악이 될 수 있나 실험하는 음악. 실천음악은 두리반이나 투쟁의 사회적인 것들에 개입하면서 인간이 자립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드는 음악. 여기서 자립하는 것은 자본에 기대어 있는 것에서부터 벗어나 일어설 수 있는 거죠. 자립음악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실천음악의 방향이 아닌가 해요.”

민중엔터테인먼트, 야마가타트윅스터

한받은 한 여인의 남편,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0월 말이면 둘째 아이도 태어난다. “좀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첫째 선율이하고 서로서로 좋은 동생 오빠가 될 수 있을 거 같고…걔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을 거 같아요. 저도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구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을까.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요. 선율이가 야마가타트윅스터 노래를 좋아해요. 음악 나오면 춤도 같이 추고. 나중에 아빠를 춤 잘 추는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가족을 꾸리는 것이 자립음악가들 중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공연할 때 괜찮으면 애기도 같이 오고 아내도 같이 오고. 그런 모습으로 후배 음악가들한테 이렇게 살 수도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두려운 길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많이 두려웠죠. 몇 년 전 어떤 인터뷰에서 풍랑 속에 있는 배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종교적인 믿음, 낙관적인 성격과 가난을 껴안고 사는 태도가 있어 아직까지 잘 버텨온 거 같다고 한다. “특히 두리반에서의 활동들이 많은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저한테도 큰 기폭제가 됐으니까요. 아마츄어증폭기로서의 내향적인 음악에서 야마가타트윅스터의 외향적인, 사회에 발언을 하는,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는, 그런 활동들에 기폭제가 된 것 같아요.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불안하지만 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민중일렉트로닉댄서 야마가타트윅스터. 그의 춤과 노래가 우리를 가장 밑바닥, 저질스러운 곳에서부터 뒤엎어주기를, 앞으로도 계속.

“저 자신도 민중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하는 것도 민중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겠죠. 계급적으로 봤을 때나. 주류의 삶은 아니니까요. 폐지를 줍지는 않지만, 구루마를 끌고 다닌다거나 그런 행위들에서 민중의 일부분이 아닌가 해요. 그 전까지의 카테고리에 담겨있는 민중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새로운 민중일수도 있겠다, 직업이 없는 대신 자립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그런 사람. 저도 그 중 일부분으로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한받

2012/10/27 11:05 2012/10/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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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의 기적> 특강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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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받 <<자연계음악론 : 경험에서 자립으로>>
8월 20일 월요일 7시 – 10시

본 강의는 10년차 (일반 대중의 측면에서) ‘듣보’음악가이자 4년차 (자칭) 자립음악가인 한받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체득한 음악생산기술을 설명하고 음악가로서 특별히 요청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대략의 강의 순서↓
0) 경험과 그것의 발효물로서의 음악
1) 샘플링과 루핑. 음악창작의 두가지 기술.
2) 음악을 그릇에 담아서 타인에게 제공하기까지
3) 지구 위 생명체, 한 인간으로서의 자립을 위한 요청

인간 한받↓

저는 저 자신을 자립음악가로 칭합니다. 왠지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을 안고 음악하고 있는 한받이라고 합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아마츄어증폭기로 활동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 두리반 투쟁에 자립음악회로 합류하였고,
많은 음악가들과 활동가들과 철거민들을 만나 감화받고 증폭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 http://www.facebook.com/events/460028310697943/
 

Posted by 한받

2012/08/20 00:30 2012/08/2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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